|
당당한 노후와 국민연금 중등부 우수상 유다은
무관심과 무능력 속의 노후 날이
무척 맑았던 얼마 전 엄마와 함께 종로에 나갔었다. 그저 생각 없이 나들이 삼아 나갔던 그 곳에서 나는 종로 거리를 돌아다니면 누구나 한 번쯤
볼 수 있는,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냥 지나쳐 가기만 할 광경을 보았다.
파고다 공원의 노인들.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잃고, 그
자식들에게조차 소외되어 버린 그분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앞으로 노령화 인구는 점점 늘어난다고 하던데 적당히 설 자리가 없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몇 십 년 뒤의 내 모습도 저러하리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와 한 세대는 차이가 나는 세상을 살아오신 그분들. 요즘의
많은 부모들은 자식에게 관심을 갖는 만큼 자신의 삶에도 충실하려 많은 것을 준비하지만 그분들은 그저 모든 것을 자식에게 맹목적으로 주고 자신의
가치는 돌보지 않았던 세상을 살았다. 자식들의 노후는 걱정하고 준비는 했을지언정 자신의 노후는 언제나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무관심과 무능력 속에서 자식들이 주는 용돈에 눈치 보며 움추린 어깨로 파고다 공원의 점심 한 끼와 같은 처지인 다른 노인들과의 만남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분들이 생긴 것이다. 남들이 손자들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그 시간에 파고다 공원이나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계신
분들의 그 심정은 어떠할까. 21세기라는 현대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그 외로움과 그렇게 몸 바쳐 길러온 자신의 자식들에게 무시되고 있다는 배신감에
떨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들이 젊었을 때 자신의 미래를 좀더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엄청난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엄마와 아빠가 작은 말다툼을 벌이시는 문제들 중 할머니의 이야기가 있었다.
친할머니께서는 지금 혼자 살고 계신다. 정확히는 사촌오빠와 함께 살고 계시지만 사촌오빠는 지금 대입 재수 중이기 때문에 어떤 벌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우리 가족이 따로 떨어져 살게 된지도 꽤 오래 된 듯 하다.
할머니와 우리 가족이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불거진 문제는 할머니께서 쓰셔야 할 생활비. 예전엔 그래도 괜찮았지만 아빠께서 IMF때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음식점을 개업하고 난 이후에 한 동안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 아빠께 할머니의 생활비는 아무리
자식일지라도 굉장히 부담이 되셨던 듯 했다. 일 중에서도 고된 일에 속한다는 음식점, 아빠가 회사를 다니실 때처럼 안정된 벌이도 아니고 그 날
하루 벌어둔 돈은 다음날 이러저러하게 또 나가고.... 음식점을 내기 위해 빌렸던 돈을 갚고 하다 보면 생활은 빠듯하기만 하셨던 모양이다.
할머니 입장에선 정말 당연하게 아빠 엄마께서 할머니께 해드려야 할 도리였겠지만 그 때의 힘드셨던 두 분께는 많은 부담이었던 듯하다. 종종
다투시는 엄마 아빠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쉽게 그 다툼이 할머니의 생활비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아빠가 하시는 음식점이 그나마 잘
되어 만두로 공장을 내신 뒤로는 엄마도 음식점을 정리하고 우리들과 함께 하시는 시간이 많아졌고, 가족 전체의 마음이 여유를 되찾았다. 생활이
전보다 많이 안정되어서인지 그 때와 같은 다툼은 많지 않지만 중학교 1학년이었던 당시를 나는 가끔 생각해 보곤 했다.
‘할머니께서
혼자 살아가시는데 부족함이 없게 해드리는 제도 같은 건 없을까?’ 엄마와 아빠의 그 다툼을 분명 알고 계셨을 할머니께서도 분명 마음
아프셨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두 분대로,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서로에게 미안하고 또 서로에게 상처 받으시지 않으셨을까? TV나 신문 등을 보면
외국의 노인들은 무척이나 당당해 보였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밝은 얼굴과 곧게 편 어깨. 젊은 사람들 사이에도 결코 기죽지 않던 당당함.
나는 그 당당함은 어디서 나올까 정말 궁금했었다. TV 속 나라와 우리나라엔 무슨 차이점이 있길래 노인들의 얼굴에서까지 차이가 날까? 아마
IMF가 한창이던 때에 우리 가족과 같은 문제에 처해 있었던 다른 많은 가정의 아이들도, 어린 마음에 혼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곤 했을
것이다.
국민연금을 반대하는 것은 잘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얼마 전까지 나는 국민연금에 대한 것은 어른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대해 알아보고, 안내 책자를 차근차근 읽어본 지금 나는 이제야 국민연금이란 것이 우리들의 당당한
노후를 보장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 국민연금이란 소득활동을 할 수 있는 젊은 나이에 조금씩 보험료를 납부하여 나이가 들거나,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 또는 장애를 입어 소득 활동이 중단된 경우, 본인이나 유족에게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소득보장제도다. 좀 더 좁은 의미로는 국가에서 국민들의 노후 소득 보장을 해주기 위해 국민 각자가 노동을 하고 있는 동안 자기
봉급에서 일정한 비율의 보험료를 내게 하고 퇴직하여 60세가 된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매월 일정한 금액을 생활비로 지급 받도록 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세대이다. 그저 자신의 자식들에게만
일종의 대가가 없는 ‘봉사’를 하고 정작 자신의 미래는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아마도 그 때는 자기 자식의 행복으로 내 인생이 얼마나 성공했나를
판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의 가치관 자체가 많이 달라져 자식의 행복도 행복이지만, 자식들을 독립시키는 것으로 내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 이후로도 끝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더 개척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노후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후를 차근차근 준비해 놓을 필요가 있다. 노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는 벌이가 없어진 그때를 대비해 일종의 ‘저축’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몇 십 년에 걸쳐 돈을 모은다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고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연금제도가 있는 것이다.
안정적인 벌이가 있을 때 조금씩 돈을 따로 모으는
것이 부담이 되진 않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생활처럼 모아둔 작은 연금이 나중에 나이가 들고 쇠약해지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기대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신감은 나의 노후를 당당하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국민연금제도가
깊게 뿌리 잡지 못하고 있다. 내가 국민연금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국민연금’이란 검색어로 검색을 했을 때도 몇 개의 안티 사이트를 봐야
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국민연금을 반대하는 이유는 국민연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국민연금이 어떤 제도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노후를 또는 -다른 많은 상황들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가장 좋은 이때가 무척 오래 갈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늙을 것이고 누구에게나 사고가 생길 수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후와
많은 사고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절대 남들에게 찾아오는 불행한 사고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전혀 다른 내 생활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기회로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알아보면서 우리 사회를 보다 편하고, 누구나 행복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많은 제도들이 있다는 것과 우리는 그 모든 제도들이
지향하는 장점을 사회복지라고 한다는 것. 그리고 불안한 노후와 언제 올지 모르는 사고를 위해 국민연금이라는 지붕이 많은 이를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에게 엄마는 언제 어느 상황 속에서든 누군가가 지켜줄 것이라는 안정감을 심어주는 존재이다.
살아가면서 있을 수 있는 많은 일들과 더불어 내 삶이 마지막까지 나를 당당하게 살수 있게 지켜줄 엄마 같은 제도, 그것이 바로 국민연금제도가
아닐까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