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4회 초등부 우수상)두 개의 노을과 국민연금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6
조회수
2717
내용
 
 
지난 겨울의 일이었다. 나는 아빠를 따라 이모할머니께서 계신다는 양로원에 가게 됐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의 자취가 희끗희끗 남아있는 산모퉁이를 돌아 어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외딴
양로원 입구에 도착했다. 그 순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낯설음 때문에 당황했다.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황량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친 까닭이었다. 그리고 왜 이모할머니란
분은 이런 시설에 계시는 것일까 의아해 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래도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색하진 못했지만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아빠에게 약간의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사라졌다. 양로원 현관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고 이모할머니가 계시는
방을 찾아들 때까지 아빠의 얼굴은 내내 굳어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아차렸다. 어쩌면 훨씬 이전부터
아빠의 마음은 상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빠께서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할머니의 두 손을
마주잡자 눈물을 펑펑 쏟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의 이모 되시는 그 분은 처음에 아빠를
알아보지도 못하셨고, 너무도 많은 주름살과 메마른 살갗에 병색이 완연해서 거동도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었다.

그 분이 딱히 이모할머니가 아니래도, 아직 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늙어 간다는 것이
얼마만한 슬픔이 되는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최소한 우리 아빠와 엄마만큼은 저렇게 늙어가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 더구나 내가 보기에 가족의 아무런 보살핌도 없이 가난하고
병들어서 외롭게 늙어간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픈 일로 새겨졌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이모할머니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아빠의 목소리는 다시 잠기시는
것이었고, 나도 따라 자꾸만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 내야만했다.

이모할머니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딸과 함께 살았다. 그렇게 혼자서 키운 딸이 자라 시집을
가고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게 되었다. 이모할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손자들을 돌보시며
그럭저럭 노후를 소일하셨는데, 어느 날 딸이 그만 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빠의 표현을
빌리자면, 파도처럼 순식간에 불행이 덮쳐서 아무런 대비도 없었던 이모할머니네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손자들은 아직 다 자라지 않았고, 딸 없는 사위를 사위라 할 것도 없었던
이모할머니는 어찌어찌 해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 이모를 찾아 뵌 아빠께서는 감정의
복받침 탓에 그렇게 엉엉 우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신 아빠의 이야기를 나는 늘 되새기게 된다. 그것은 두 개의 노을에 관한 이야기다.
노을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장엄하게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 무렵 해변에
그 광경을 만끽하며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때로 운명이 갈퀴처럼 그에게 달려들어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또 이루고 싶던 모든 일이 언제나 소망대로 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열심히 살았고 닥쳐오는 삶의
어려움에 결코 노여워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는 결코 쉽지 않은 시기에도 노후에 대비해 늘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노을을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해변에서의 노을은 무엇인가, 곧 다가올 어둠을 상징할 뿐더러 어쩌면 늙어 가는 것과 마침내
죽어 가는 것에 대한 암시일지도 모른다. 분명 아빠의 얘기는 그러한 뜻을 담고 있었다.

아빠가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렇게 노을을 즐기며 감탄하던 사람말고 또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어둠과 일렁이는 파도에 맞서 필사적으로 조각배를 저어가고 있던
사람이다. 그에겐 붉게 물든 노을의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자연의 신비, 조물주에 대한 그
어떤 경외감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오직 더 짙은 어둠이 바다를 점령하기 전에, 더 높은 파도가
조각배를 삼켜버리기 전에 육지로 돌아가야만 하는 절박함만이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의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보는 똑같은 노을을 두 사람은 전혀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 같은 노을이 전혀 다른 성질과 의미를 갖는 두 개의 노을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빠의 말씀이 의미하는 교훈을 나는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었다. 열심히 살되, 그 순간만을
위하지 말고 늘 나중을 대비하라는 것, 그러면 후일 여유 있게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나의 감상이나 해석을 묻지는 않으셨지만 아빠의 뜻을 내가 모를 리 없다. 나는
아직 어리지만 곧 중학생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아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빠께서는 늘 그렇게
살아오심으로 우리에게 몸소 가르쳐주셨다.

그런데 곧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실제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나중을 대비한다는 것인지 그
구체적 방법이 궁금했던 것이다. 아빠는 어떤 문제에 대해 스스로 묻고, 여러 번 깊이 생각해서
스스로 답을 찾아보도록 가르치고 훈련하도록 하셨지만 이번에는 질문을 드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은행에 저축하는 것과 보험에 들어두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아빠는 국민연금이라는 제도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랬다. 아빠가
안타까워하셨던 것은 이모할머니의 외롭고 쓸쓸한 노후가 아무런 준비 없이 닥쳐왔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평생 외로우셨을 삶과 하나뿐이었던 자식의 병사와 양로원에 들어가시기까지 있었던
마음의 상처와 가깝거나 먼 친척들 누구도 그 분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세태의 야박함 따위에
대해서도 아빠께서는 마음상해 하셨다. 그러나 국민연금이라는 제도가 좀 더 일찍 시행되고
그리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더라면 적어도 이모할머니가 겪는 쓸쓸함이 훨씬 덜하지
않았을 것인가 하고 아빠와 나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국민연금제도라는 것은 의료보험과 함께 국가적인 부조로써 열심히 사셨던 국가의
구성원들이 노후를 보다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평소에 일정액씩을 거두어 운용하는 하나의
사회복지 시스템이라는 것을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모든 부분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생존의 원리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회안전망을
국가의 공적부조가 대신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국민연금제도라는 것을 어려운 용어를
섞어서 아빠가 설명해 주셨다.

아빠는 벌써15년 전부터 국민연금에 가입해서 매월 소득의 일정액을 납부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60세가 되면 매월 적지 않은 연금액을 지급 받으신다고 했다. 그럴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혹시 불의의 사고로 몸을 다칠 경우는 장애연금이, 정말 원하지 않는 불행한 일이 생길 경우는
유족연금이 나온다고 하셨다. 그러니 걱정 말라고, 저축도 하고 보험도 들었지만 가장 든든한 건
국민연금이니 너는 건강하게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그런 아빠의 말씀은 내게 든든한
위안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나도 자라면 아빠처럼 열심히 살 것이고 효도할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중을 대비할 것이다. 그래서 바닷가의 붉은 노을을 아름답게 감상하며 지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에 이모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모할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나는 그런 소망을 해본다. 국민연금제도가 더욱 튼튼히 뿌리를 내려 우리 이모할머니와
같은, 붉게 물든 노을 아래 필사적으로 배를 저어 가는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든든한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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