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우수상)최후의 생계수단 국민연금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620

내용

“아줌마 빨리 좀 나와 보세요. 아저씨가 떨어졌어요!”
이게 무슨 청천벽력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는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 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떨어진 사람은 분명 내 남편이 아닌가?…….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남편은 흙바닥에 떨어져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다행히 정신은 멀쩡했고 위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을 호소했고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고 했다.
119차가 와서 태우려고 했으나 전혀 몸에 감각이 없어 간신히 태웠다. 병원으로 옮긴 뒤 응급실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다친 시각이 밤 12시쯤이고 응급실에 1시 쯤 도착했기에 의사를 기다리는 것과 사진을 찍는 시간들이 새벽이라 꽤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고 남편은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이 너무 심해 못 견디어 했다.
드디어 사진을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의시가 밖으로 나와서 보자고 하더니 하는 말이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했다. 남편은 척추 뼈와 골반 뼈가 너무 많이 부서져서 수술을 해도 하반신 마비가 되어 다시는 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일은 다른 사람한테나 아니 남한테나 생기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럼 남편이 장애인! 정말 장애인이란 말인가! 그동안 제대로 관심 한 번 가져주지 않고 이상하게만 여겼던 그 장애인이 이제 내 남편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 결과를, 이 현실을 받아들이란 말인가!
난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그 날 새벽에 울은 내 울음소리는 통곡의 눈물이 되었고 지금껏 살면서 가장 많이 흘린 눈물로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니 내 가슴이 저미는 것 같고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겁다.
드디어 대수술을 시작했다. 이 순간은 어떻게 하든지 좋은 결과가 있기만을 위해서 내가 믿고 의지하는 나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해야만 했다. 의사가 말한 결과가 어긋났으면, 아니면 비록 마비가 된다 해도 수술이 잘 돼서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남편은 4시간이 걸린다는 수술시간이 정작 8시간이 걸려서야 끝나고 말았다. 난 너무 수술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남편이 잘못되면 어찌하나 아니 장애인이라도 좋으니 살아만 주었으면 얼마 좋을까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그 날의 그 초조함과 남편이 드디어 수술을 다 끝내고 회복실에서 눈을 떴을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 날은 여태까지 살면서 남편에게 못해주었던 것, 미워했던 것 등이 얼마나 미안하고 죄스럽던지, 마치 죽어서 다시는 얼굴을 못 볼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술은 끝나고 병실로 왔을 때 상활은 생각했던 것처럼 되고 말았다. 수술은 잘되어 허리에 뼈를 잘 맞추기는 했지만 워낙 뼈가 많이 으스러져서 허리뼈에다 쇠를 박아 고정시켰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진짜 쇠 박힌 사진이 보이니 정말 참담하고 또한 평생 저렇게 살 것을 생각하니 너무 불쌍했다.
한 달이 지나고 허리와 다리의 붕대를 풀고 다리를 움직여 봤으나 역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대소변도 받아내야 할 만큼 감각이 전혀 없었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이제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난 이제 모든 것을 처리해야만 했다. 난 보험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다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험 혜택도 되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남편이 떨어졌던 그 날 일을 조금 설명을 하면 남편은 그 날 늘 하던 습관처럼 담배를 피러 옥상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 밑에서 어떤 술 취한 사람이 남편에게 욕을 해대고 그랬단다. 화가 난 남편은 한마디 하려고 하다가 옥상 담벼락으로 너무 가깝게 다가갔다가 발을 헛디디다가 떨어지고 만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다 다쳤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험이래도 들어놨다면 얼마나 좋을까, 참 운도 없구나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만 지금 이 결과가 나의 현실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을 책임져야할 가장 아닌 가장이었다.
이제 병원에서의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이 내게도 시작되었고 다친 사람은 다친 사람이고 난 병원비 갚아야지, 생활비는 딱 끊겼지 정말 물질의 고통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렇다고 당장 돈 벌러 나갈 수도 없고 형제들이 다 잘사는 사람 하나도 없고, 몇 개월 사이 벌써 몇 천만 원 다 까먹고 할 수 없이 집도 팔고 또 나중에는 전세금까지 다 까먹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정말 무슨 혜택을 받을만한 것은 없을까 다 찾아 다녀보기도 하고 하다가 그러면서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6개월이 됐을 때 남편은 뜻하지 않게 장애판정을 받고 말았다. 그것도 하반신 마비라서 1급으로 판정이 나고 말았다. 이젠 다시 나는 장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다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너무 뜻하지 않게 생각난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민연금에서 주는 장애연금이었다. 나는 이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너무너무 기쁨이 솟아올랐다.
남편은 한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해 왔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혹시 안 되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과 함께 난 바로 국민연금에 문의를 했고 장애 1급 판정을 받았으니까 서류심사만 잘 통과되면 잘 될 수 있을 거라 했다. 또다시 내가 믿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냥 허리만 다치고 정신 멀쩡한 것에 감사하고 살겠으니 제발 국민연금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했다.
드디어 한 달의 심사 후 남편은 국민연금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생각한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게 되었다. 난 10년 전 그 때를 떠올려 봤다. 남편의 월급에서 매일 빠져나가는 국민연금이 얼마나 아까웠던지 차라리 국민연금 내기 싫어서라도 직장을 그만두라는 악담까지 했고 왜 강제로 걷느냐고 투덜거렸던 이 꼴 보기 싫은 국민연금이 지금 우리에겐 최후의 생계수단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강제로까지 내라 했기에 우리는 이런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고 나에게도 설마 하던 우리 가족에게도 불행은 찾아올 수 있기에 강제로 걷게 하는 것이다. 아니 노후연금도 그렇다. 사람은 다 늙어가기 때문에 세월은 다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 또한 부인할 수 없고 그렇다면 정말 어떤 경우든 국민연금은 필수인 것이다. 또한 가입중이나 연금수급 중 죽으면 유족연금도 주지 않는가. 이렇게 중요한 연금제도를 왜 내가 그토록 내기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한 달이면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고마운 국민연금이 있기에 우리 가족은 그나마 살 수가 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니까 또한 노후에 돈 없으면 힘들고 비참할 것을 국가는 알기에 이렇게 강제로라도 들게 한 이 나라가 너무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연금을 받다가 60세 이후 노령연금이 발생되면 새로 발생된 노령연금과 받고 있는 장애연금 중 유리한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것 또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그리고 물가가 올라감에 따라 연금도 거기에 맞춰 올라간다하니 이것 또한 얼마나 괜찮은 제도인가.
난 이제 열심히 살 것이다. 남편의 다침은 나에게 인생의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남편의 수입에 만족치 못했던 나의 교만함과 매사에 감사치 못했던 일과 남편의 자리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남편이 이렇게 되니까 아무 힘도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전에는 남편의 월급 없이도 난 내가 더 열심히 벌어서 남편보다 더 많은 월급으로 더 잘 살 것이라고 그렇게 오만하더니 이렇게 됐구나, 그리고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난 이제 가난한 사람이 보인다. 내 눈에는 장애인들의 고통이 이제는 보인다.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국민연금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작은 희망이 있었겠는가.
요즈음 TV에 나오는 국민연금 광고방송이 너무 나한테 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것은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돈, 넉넉하지는 않지만 너무너무 소중한 돈이기에 나는 이렇게 내일에 대한 희망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