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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여자중학교 2학년 김 수 잔
곧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쏟아져 내리는 더위를 선풍기 한
대로 식히기에는 번뜩이는 햇살이 만만찮다. 백년 만에 온다는 더위답게 30도가 넘는 날씨가 일요일 아침부터 나를 도서관으로 향하게 한다. 엄마와
약속한 기말고사 성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갑자기 힘들어진 집안환경 때문에 오랫동안 방황을 했기 때문이다. 차마 말할 수 없이 어려운 환경이
닥쳐와도 긍정하고 웃음 짓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엄마의 바람대로 흐트러진 마음이나 정리해 볼까 한다. 엄마는 일찍 돌아가신 아빠를
대신해서 우물 같은 사랑으로 동생과 나를 키워오셨다. 그러나 중학생이 된 지금은 동생과 내가 방을 함께 쓰고 엄마는 겨우 침대 하나 들어가는
작은 방의 집을 세내어 살고 있다. 엄마의 사업 실패로 힘들여 모아놓은 재산과 집을 다 잃고 갈 곳이라곤 아무 데도 없었다. 방 얻을 돈이
없어 여기저기 사정하다 거절당해 우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보다 초라해지는 내 모습이 부끄럽고 싫었다. 버팀목처럼 항상 당당했던
엄마의 축 처진 어깨가 낯설기도 했다. 엄마가 몰래 읽고 감춰둔 편지는 전부 집을 비워달라는 내용이었고 결국 엄마는 어지럽다며 앓아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었다. 환경적인 운명을 애써 감추며 아플 틈조차 없던 엄마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난 돌아가신 아빠를 원망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잃고 아직까지도 넋을 놓고 계시는 할머니께서도 형편이 안 되셨든지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못 주셨다. 돈을 빌려도
돌려줄 능력조차 없던 엄마는 더 이상 아무에게도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모자세대에 대한 지원이나 저소득층 지원도 서류상의
문제로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우리에게 힘이 된 것은 아빠가 남겨놓은 국민연금이었다. 한동안은 우리들 교육비로 사용하던 국민연금을
3년 전부터는 생명보험과 개인저축에 불입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빠 생각에 기쁨보다 늘 슬픔이 많으셨을 엄마는 휑하니 들어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국민연금으로 불입하던 생명보험과 개인저축을 해약하고 부족한 보증금을 해결하여 조그만 집으로 이사를 했던 것이다. 비록 작고
남의 집이기는 하지만, 엄마는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셨고 나와 내 동생도 전교10등과 30등을 목표로 도서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게
이 기억은 쓰라림과 고통으로 남아 있을 테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희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슴 한껏 사랑하게 되었다. 누가? 어떻게?
희망을 주는지… 지금 나는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어떻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인지?’ 라는 성숙한 생각을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다.
국민연금을 공부하면서 나를 너무 일찍 철들게 했던 무너진 우리 집 경제력과 아빠의 흔적 중 소중하게 남아있는 국민연금이 주는
행복지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매몰차게 내동댕이쳐진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현실에 있었고, 가장 먼저 달려와 준 것에 대해, 그리고 자신조차
놓아 버릴 것 같은 절망 속에 있던 엄마와 가족에게 용기를 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국민연금은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 소중한 역할을 해주었다. 아빠는 연금 가입 경력이 19개월밖에 안 되었고 수입의 3%만을 냈던 국민연금 시행 초기에
가입하셨기 때문에 가입 후 10년 미만 직장인들이 받는 월 14만 원 정도의 유족연금으로 수급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족이 받고
있는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분을 반영하는 실질가치를 인정받아 20만 원이 조금 넘는 연금수급 가정이 된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해 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개인이 가입해놓은 연금처럼 충분하거나 여유있는 보장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금액이어도 소중한 가족사랑을 배울 수
있는 역할까지 톡톡히 해주었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은 좀 더 많은 연금을 납부하여 아빠처럼 가입한지 얼마 안 되어 사고를 당했거나, 소득이
적어 많이 낼 수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이미 불행에 처했거나 경제력을 상실한 노후연금 수급자들에게 그 혜택을 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국민연금의 소리 없는 소득 재분배 기능이 사랑으로 실천되어 소외된 사람들에게 불행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다. 건강하게
경제활동 하다가 나이가 들었을 때 받는 노후연금도 연금의 실질가치를 항상 보장해 행복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개인이 준비하고
있는 개인연금의 경우, 20~30년 뒤에는 1억 원의 가치가 3천만 원정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가상승과 시중금리의 하락으로 인한 돈의
가치하락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 중의 소득을 연금 받는 전년도의 현재가치로 재평가하여 실질소득 수준에 맞는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연금의 큰 장점이며 안정된 노후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이다. 즉 국민연금제도는 ‘나’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제도이다. 18세 이상 60세 이하의 소득이 있는 국민이면 누구나 가입해야 하는 의무사회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회복지제도가 자리도 잡기 전에 이미 노령화사회에 진입해버렸다. 2050년쯤에는 저출산으로 인해 최고로 고령화된
사회가 될 거라는 내용도 보고된 바 있다. 핵가족화와 저출산 등으로 인해 노년층이 많아지는 노령화 사회에서는 개인이 노후생활보장을 준비하고
가족이 부양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될 수 없다. 국가나 사회구성원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만 사회기능이 원활히 수행되는 복지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보고된 바에 의하면 근로자들도 10명 가운데 3명 정도만 노후대책을 준비한다는 통계가 있으니 공무원이나, 교사, 군인 등 별도로
다른 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들의 노후대책은 국민연금과 같이 공동책임의 기능을 가진 연금제도의 몫일 수밖에 없다. 공동책임의 기능과
사회 기초보장제도로서 국민연금이 완벽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불만이나 납부 예외자, 체납으로 인한 연금소외계층 등의 요소를 정부와
연금제도사의 과학적인 기금 운영으로 해소해야 할 것이다. 현재 경제력을 갖고 있는 근로세대와, 노인세대, 그리고 성인세대들이 다가올
문제점들에 대해 과학적인 합의가 있어야 확실한 사회보장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불신과 결과 없는 논쟁 때문에 17년 동안이나
사회보장제도의 정착을 미루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고 사는 130만 명이 넘는 수급자들의 ‘희망’을 꺾는 일이며, 복지선진국을 꿈꾸는
국민들을 저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사회복지제도가 정착하는 속도보다 급격하게 다가오는 노령화사회나 각종 사고에 대한 노출은 국민연금제도의
정착을 미룰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내용을 살펴보니 연금운영에 있어서도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가볍게 하고 있지
않았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재정계산제도’를 두어 연금고갈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복지부와 감사원, 국정감사 등을 통해 운용과정을
엄격하게 감독받고 있다. 기금 중 133조 원은 대부분 안전한 국공채에 투자하고, 8%정도를 주식 등에 투자하는 안전한 운용방법을 택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민간보육시설 및 유료노인복지시설자금 등 사회경제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20연기금 가운데 ‘세계
8대 연금’으로 성장하는 좋은 소식은 사회기초보장제도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몇 십 년 뒤에 올
연금고갈까지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예리한 국민들이다. 제도의 보완과 국민들의 이해로 불필요한 요소들은 고쳐지고 성숙해질 수 있을 거라
본다. 국민연금은 풍족한 생활유지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는 사회기초보장제도라는 인식과 함께 이 제도를 사회에 정착시키고, 꼭
필요한 사회복지제도로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몫이라는 성숙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중학생인 내가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깊게 공부를 해 보는 것도 어른이 된 10~20년 후에 엄마처럼 불행해지거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넉넉한 몫을 하기 위함이 아닐까? 은퇴 후 30~40년이나 더 주어진 노후생활의 행복을 위해, 갑자기 원치 않는 불행으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나눠주고 나누어 받는 방법을 국민연금제도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휠체어가 필요하고 지팡이가 필요한 장애우들의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꿈과 희망을 함께 주는 사회복지제도로 국민연금이 자리 잡길 바라면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