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6회, 장려상)보라 빛 하루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373
내용
제6회 장려상
보라 빛 하루

감 영 덕/부산시 진구 부암1동


도심의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지 너댓 시간 지났을까. 집배원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편지는 검게 찌들린 얼굴에 또 한번의 두려움 반 걱정 반 공포의 눈빛으로 돌변케 한다. 혹시 '공과금 독촉장'. 희뿌옇게 아물거리는 눈을 부비며 상기된 마음으로 몇 번씩이나 읽어 봤지만 뜻밖에도 '노령연금 수급증서'가 아닌가. 한참동안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몇 년 전 국민연금 납입 운운하던 아들 녀석이 떠오른다. 노후보다는 지금 당장 생활이 시급한데, 생일날 하루 잘 먹자고 몇 달을 굶어야 한다는둥, 연금은 무슨 연금이냐며 아들 녀석에게 심하게 호통을 치던 일이 영화필름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아무런 말도 없이 듣고만 있던 아들 녀석은 생활비의 일부를 연금관리공단에 매월 입금 했던 모양이다.


뜻밖의 노령연금 수급증서
회색 빛 콘크리트 빌딩숲 사이 복개천 한켠에 쓰러질 듯한 오두막집, 이곳이 나의 안식처이며 유일한 생활 터전이다. 마름모꼴로 뒤틀린 방문은 입을 반쯤 벌리고, 어두 컴컴한 벽면엔 온갖 신문지로 대벽은 돼있으나 비가 새는 탓인지 얼룩으로 뒤엉켜 한 폭의 묵화를 보는듯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시멘트 담장엔 청 이끼가 틈새를 메우고, 담장 밑 구석진 곳엔 잡초가 엊그제 비가 왔음을 알려주듯 파릇파릇한 잎새를 띄우고 있다. 타원형으로 휜 수레바퀴는 덜커덩 덜커덩 소음과 함께 6차선 도로 위 황색선 틈새로 차량들의 행렬에 뒤엉켜 이끌리다 시피 멈춘 곳은 어느 가판대 앞이다. 구겨진 신문지 몇 장 구멍가게 옆 빈 공터에 약간의 보루박스 그리고 빈 소주병 몇 개가 어느새 손수레의 반을 채우고, 별다른 직업이 없는 나에겐 시전역이 나의 작업터라고 생각하니 무엇보다 다행스럽고 안도의 한숨이 놓인다. 앞으로 2.3일간은 부지런히 수집해야 고작 몇 천원에 불과하다.

이런 실정이고 보니 나에게 주어진 노령연금은 여타 보험상품보다 노령연금이야말로 효자상품이 아닌가 싶다. 먼동이 트기도 전에 도시락을 챙겨 줬으나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들어서는 아들녀석이 안쓰러워 보인다. 오늘도 작업순번을 못 받은 모양이다. 하기야 요즘처럼 불경기에 인력 시장인들 오죽하랴..


국민연금이 가져다 준 콧등 찡한 작은 행복
'매월 말일은 연금 수급일' 몽당 연필 같은 목도장, 예금통장 그리고 희미하게 떠오르는 비밀번호. 건망증이 심한 탓에 혹시라도 잊을세라 계속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비는 온갖 합병증으로 문밖 출입은 커녕 집안에서 소일하다 보니 두 서너벌의 스댄 그릇과 수저 두벌이 전부다. 아내는 평퍼짐한 엉덩이로 사과 궤짝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떫은 감을 씹은 듯 입을 한발이나 빼물고, 뭔가 불만스런 눈초리가 역력하다.몇 푼 안 되는 노령연금 탓일까? 육중한 아내의 체중에 금방이라도 찌그러질듯한 사과 궤짝에 귀를 쫑긋이 세우고 머리를 갸우뚱 거리는 일년생 강아지는 주인마님의 안전사고를 염려라도 하듯이 끙끙거리며 꼬리를 흔들어 보인다.

인고의 세월만큼이나 겹겹이 쌓인 눈꺼풀 주름 사이로 어느새 이슬이 맺히고 깊게 폐인 양 미간엔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많고 적음을 떠나서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동해서 일까. 적은 생활비에도 불구하고 연금을 마련해준 아들녀석의 효행이 없었다면 희비가 엇갈리는 현실마저도 불가능 했기에 더욱 콧등이 찡해온다. 빌딩 끝 자락에 걸쳐있는 실눈같은 그믐달이 마귀할멈 같은 자태로 창문 틈을 파고들며 피곤에 찌든 육신은 잠을 청해 보지만, 마음은 어느새 쓰레기장에 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면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리' 다소 부족하더라도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것이 곧 작은 행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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