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우수상)국민연금의 배를 타고 세월의 강으로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537

내용

“여보! 다녀올게요.”
화장실 출입도 못하던 남편이 현관문까지 따라 나와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나에게 환하게 웃으며 배웅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요즘 너무도 행복합니다. 한 때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끼니 걱정도 하지도 않고 전기요금, 수도요금, 각종 공과금도 제 때 납부할 수 있으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두부가 왔어요.’ 딸랑딸랑 종소리가 나면 달려 나가 두부 한 모 마음 놓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행복인지 정말로 어려운 고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릅니다.
돈이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쓰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남들처럼 시장에 가서 생선과 야채도 고르고 철따라 맛있는 과일도 사먹고, 옆집 애기 백일이라고 떡이라도 가져오면 귀여운 장난감 선물도 하고, 가까운 친척이 큰일을 치르면 적은 부조라도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웃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없이 부럽기만 했는데, 우리 집도 이제는 국민연금과 맺은 특별한 인연으로 남편은 장애연금 수급자가 되었고 나도 직장을 다니면서 받는 적은 월급으로 이런 소망들을 모두 이루고 살고 있으니 참으로 꿈만 같습니다. 희망이 없던 우리 가정에 이런 행복을 가져다준 것은 모두가 국민연금의 덕택이랍니다.
지금부터 약 5년 전 지금도 그 때 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꿈만 같습니다. 우리가 포항에서 통닭집을 할 때만 해도 몇 십 만원은 큰돈으로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애들 용돈도 서슴없이 주면서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로 장사가 잘 되어 나는 손님을 받으랴 전화 주문을 받으랴 눈 코 뜰 새가 없었고 남편은 쉴 틈도 없이 배달 일을 하면서 힘들게 일을 했지만 참으로 우리 가족에게는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만나게 된 것은 양반 좋아하던 우리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충청도 양반이라며 이모가 남편을 처음 집에 데리고 오던 날, 시골의 별 반찬도 없는 밥 한 사발을 뚝딱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반했던 어머니는 맏사위감이라고 내게는 묻지도 않고 결혼을 허락하여 우리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글쎄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힐 일이지만 충청도로 시집을 와서 보니 남편은 막장에서 탄을 캐는 광부였고 나는 산 설고 물 설은 낯선 타향에서 석탄 캐낸 옷가지를 들고 냇가로 나가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 추운 겨울, 차가운 시냇물에 빨아도 빨아도 석탄 물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열심히 일을 했고 나는 알뜰살뜰 돈 모아서 몇 년 후에는 친정 가까운 곳에 조그만 양념통닭집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차츰 사업도 번창하고 아이들은 탈 없이 곱게 자라주어 우리 부부는 부푼 희망으로 더욱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란 말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인가
1995년 7월 23일. 배달주문이 많아 몹시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더니 갑자기 쓰러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방병원에서 침과 한약으로 치료를 해보았지만 도무지 차도는 없고 두통이 너무 심하여 울부짖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단순한 뇌경색이 아니고 종양이 있는 것 같으니 큰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밤중에 서울로 이송하여 응급실에서 일주일, 입원실에서 두 달. 그러나 퇴원할 때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정신마저 오락가락하는 불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대소변도 못 가리는 신세가 되고 보니 그 때부터 장사고 뭐고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고, 남편이 어쩌다 정신이 들면 죽으면 고향 땅에 묻히고 싶으니 고향으로 가자고 날마다 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에 가면 행여나 안정을 찾을까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남편 고향으로 이사를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996년 3월 22일 남편이 그리던 고향 성주에 짐을 풀고 다음 날 면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려는 데 국민연금에 가입신고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생각해보니 남편이 쓰러지기 전에, 우리도 남들처럼 달리 들어놓은 보험도 없는데 국민연금이라도 가입해야겠다고 하여 가입신청을 했었지만 갑자기 남편이 쓰러지고 보니 보험료를 납입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가입한 국민연금인데 남편 생각을 해서라도 힘들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꼬박꼬박 납부하리라 마음먹고 자동이체 신청도 했습니다.
수입은 아무 것도 없는데 이 약이 좋다하면 이 약, 저 약이 좋다하면 저 약, 쌓이는 건 약이요, 줄어드는 것은 돈이었습니다. 남편 치료비며 생활비는 한 달에 얼마가 나가는 지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보니 정말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한참 돈이 들어갈 중고등학생이 되었고 이제는 정말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무엇이든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참담했던 심정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면사무소에 찾아가 사회복지 담당자에게 어려운 사정을 말하고 어떻게 한시적이라도 좀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형편이 상당히 어려우신 모양인데 아파트가 있으면 달리 지원해줄 방법은 없고 딸아이에게 시청에서 나오는 장학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보겠다며 큰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미 쌀통은 비어 있고 도움을 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자는 가장 어려울 때는 친정어머니 밖에 없나봅니다. 도와드리지는 못할망정 무슨 염치로 늙은 어머니한테 손을 내밀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별 수 없이 전화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설마 딸자식이 이처럼 어려운 줄도 모르고 “얘야 벽을 지고 있어도 남편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하시며 남편 잘 돌봐주라는 말부터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라오고 팔자 사나운 것이 무슨 부모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지게도 없는데 벽은 어떻게 지고 있으라고?” 나도 모르게 늙은 어머님께 볼멘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볼멘소리를 금방 알아차리시고 “그래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어미가 어떻게라도 해보마.” 하시며 내일 농협에 가서 대출이라도 받아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늙은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 도와달라는 말이냐고 하셨으면 마음이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어서 수화기를 그냥 놓고 말았는데 금방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국민연금 직원이라며 밀린 보험료를 납부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딱한 사정을 안타깝다는 듯 듣고 있던 직원분이 이것저것 물으시더니 남편께서는 가입 중에 장애가 발생하였으니 공단에 꼭 한 번 방문하여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자세한 상담을 받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주민등록증을 들고 장애연금 담당자를 찾아갔더니 정말로 친절하게도 설명을 해주면서 장애연금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적어주셨습니다.
초진 진단서를 갖추려면 경주까지 가야하는데 도움을 받을 사람은 없고 남편한테 잠시 불편하더라도 참고 있으라고 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여보 설마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겠지”하며 울먹이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처량한 내 신세를 생각하며 두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추풍령 고개를 넘으니 옛날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포항으로 장사를 하러 내려올 때에는 부푼 희망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노래도 하며 넘었건만 지금은 절망의 신세가 되어 두 눈을 꼭 감고야 말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는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살던 고향 경주는 변함이 없고 어린 시절 토끼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던 길은 여전히 정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고모! 하고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 고모님은 버선발로 뛰어 나와 우리 아기 소식도 없이 어쩐 일이냐고 하시며 얼싸 안아주셨습니다. 간난 아이 때부터 우리애기, 우리애기 하시면서 저를 키워주신 분이라 내 나이 50이 다 된 지금도 여전히 애기라고 부르십니다. 나는 쌓이고 쌓인 서러움이 북받쳐 고모님 품 안에서 목을 놓고 울고 말았습니다. “그래 울어라! 실컷 울고 내일부터는 웃고 살자!” 하시며 함께 눈물을 지으셨습니다. 한방병원에 가서 서류를 발급받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버스터미널까지 따라오신 고모님께서 밀린 보험료라도 내라시며 꽤 많은 돈을 제 손에 꼭 쥐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고모님이 주신 돈으로 밀린 보험료를 납부하고 장애연금 신청서류도 제출하고 두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공단에서 1996년 8월부터 2000년 3월까지 10,652,010원을 통장으로 입금시켰으니 확인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나는 도무지 믿기지 않아 살을 꼬집어보고 통장을 확인해보고 몇 번을 되풀이 하고서야 “국민연금 고맙습니다.” 하고 외치면서 남편을 붙잡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우리를 도우셨는가? 이렇게 많은 돈을 한꺼번에 주고도 다음 달에도 또 다음 달에도 매달 삼십 만원도 넘는 장애연금을 평생토록 받게 되다니 이것이 정말이란 말인가? 이렇게 살 길이 막막하고 절망의 기로에서 헤어날 길이 없던 우리 가족에게는 생명의 은혜요, 희망의 불씨였습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이 고마운 마음을 더 이상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죽는 날까지 국민연금에 대한 고마움은 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일부 사람들이 국민연금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과 불신을 갖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내 자신의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국민연금의 필요성에 대하여 입이 마르도록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화장실 출입도 하지 못하던 남편이 지팡이에 의지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걷기 운동도 할 수 있고 아이들도 잘 자라서 딸아이는 대학교 3학년, 아들도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우리 가족에게 국민연금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도저히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남편은 비록 소중한 왼쪽 건강을 잃었지만 그래도 든든한 국민연금이라는 지팡이가 있어 의지할 곳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며, 이제는 내가 만약에 지금이라도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해도 국민연금이라는 영원한 지팡이가 있으니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민연금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하는 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국민들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것이며, 나는 오늘도 남편의 부족한 왼쪽이 되어서 국민연금의 배를 타고 행복한 세월의 강으로 이렇게 유유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
①가입 중에 발생한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하여 ②완치시점 또는 초진일로부터 2년 경과시점 후에도 ③장애가 남 았을 때 장애정도(1~4급)에 따라 일정한 급여를 지급한다

⇒ 완치시점이란 병이 완전히 나아 완쾌시점이 아니고 치료가 종결되고 질병이 안정되어 증상이 고정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