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제5회 장려상)환갑을 지나 다시 찾은 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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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부서
- 홍보실
- 등록일
- 2003/08/20
- 조회수
- 2286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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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장려상
환갑을 지나 다시 찾은 젊음
배상삼/서울시 중랑구 중화3동
저는 벌써 환갑 진갑까지 다
보내고, 죽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60대 중반에 접어든 모자라는 인간입니다.
일제 통치 시절인 1937년 4월 2일에 가난한 농부의
4형제 중 늦둥이 막내로 내어나 8·15해방, 6·25사변, 4·19, 5·16, 5·18,그리고 건국이후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반세기만에 역사적인 남북 이산 가족들의 상봉 등등의 역사의 한 증인으로 살아오면서, 머리에는 차디찬 서리를 맞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났고,
얼굴에는 골이 깊어진 보잘것없는 노인이었는데, 1988년부터 시행된 국민연금 덕택에 맑고 푸른 젊음을 되찾아 건강하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님께서 시골 양조장에서 일을 하시면서 가져오신 술 찌기에 사카린(설탕 대용품)을 섞어 끼니를
대신하였고, 점심 시간이면 항상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지 않고 밖에 나간다고 교무실에 붙들려가서, 담임 선생님(김치규 선생님)으로부터 호된 회초리
세례를 당하던 중, 저의 가정 형편을 잘 아는 후배 친구의 배려(선생님께 제가 싸 가지고 온 술 찌기 도시락을 개봉시킴)로, 교무실에 계시던
모든 선생님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기억(모진 가난)을 더듬으면 지금도 눈언저리에 짙은 이슬이 맺히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못 살았던
내 조국 대한민국이 세계 12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였고, 국민 소득도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다가서고 있는 동방의 예의지국.... 정말 우리
국민(민족)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자부심을 잊어 본 적이 없답니다. 그렇지만,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경로 사상이 점점 퇴색되면서 자식이 곧 노후의 대책이었던 미풍양속은 점점 사라지고, 몇 년 전 부모를 모신 딸이 그 부양비를 받겠다고,
소송을 제기 하는가 하면, 유산 때문에 자식들간에 싸움까지 하는 사례가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우리 모두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했던 사건들, 그리고
이젠 재산이라는 개념마저 전세를 살면서도 자동차가 꼭 있어야 하고, '아파트를 장만하기에 앞서 삶을 먼저 즐기자'로 변화된 현실을 직시하면,
우리 모두가 머릿속에 심고 가슴속에 담아 꼭 실천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전 국민의 국민연금 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 할 때 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인플레가 진정되지 않아 실효가 없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전액을 퇴직금으로 받은 과오를 범하여, 60세 전 만 해도 연금을 받고있는 동료들을 부러워했고, 또 순간적으로 저지른 제
자신의 과오를 질책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전역 후 중소 기업체의 중역으로 근무하다가 1988년 4월, 20여명의 종업원과 같이
삼환전기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제일 먼저 전 직원의 국민연금 가입을 독려하였습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복지를 미리
준비하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예측 할 수 없는 사고와 위험에 대비하고, 우리들의 안락한 노후를 위한 사회보장제도임을 강조하고, 저
자신의 전역시 일시 퇴직금을 수령한 어리석은 과오를 범한 것을 덧붙이면서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제가 전역당시 잘못
판단한 것과 같이, 우리 나라는 인플레가 진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반대만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번의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전체 종업원의 최초 2회분은 제 개인돈으로 불입하기로 약속하고, 모두 국민연금에 가입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발행되는 홍보 책자를 탐독하면서, 국민연금은 장차 다가올 자신의 노후에 편안한 결실을 보장 하지만, 매월 국민연금을
납부함으로써 국가 건설에도 이바지한다는 동참의식도 고취시켰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아들, 딸, 며느리에게 용돈을 얻어 쓰기 위해 빈손을
내밀며 살아가는 서글픈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 능력이 있을 때 노후에 대비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수시로
강조하였습니다.
전 종업원이 국민연금에 가입한지 9년이 지난 1997년 말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I. M. F한파로 삼환전기주식회사는
종업원과 합의하에 폐업하게 되었고 저는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지금까지 각자 불입된 국민연금은 얼마 안되지만, 그것을 일시금으로 찾아서
국민연금과 인연을 끊어서는 안되며, 다시 어떤 회사에 취업하던 60세가 넘은 후 연금 혜택을 받도록 계속 불입할 것을 강조하면서, 조촐한 회식을
마감으로 서로 뿔뿔이 헤어져야 하는 쓰라린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회사가 폐업된 후에도 저는 1998년 9월까지 임의가입을 신청하여
연금보험료를 매월 계속 납부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개월 후 1998년 10월 말경 국민연금관리공단 동대문중랑지사에서 방문해 달라는
전화 연락을 받고 방문하였는데, 저는 3번이나 깜짝 놀랐습니다.
첫째는 국민연금 직원들의 보잘것없는 노인에게 베푸는 너무나 극진한
친절이었고,
둘째는 1998년 12월부터 국민연금의 수혜자가 되는데 2년 남짓만 받으면 불입액 전액을 돌려 받게 되는 것이고, 제가 사망
시까지 계속연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물가상승률에 따라 증가하며, 사망 후 부인에게까지 연금혜택이 이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65세까지
임의계속가입 후 66세부터 받는 경우와 1998년 12월부터 받는 경우의 비교표를 제시하면서 선택하라는 친절에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후 저는 1998년 12월부터 2000년 4월까지는 매월 22만여 원의 연금을 지급받았고 , 5월부터는 25만원에
가까운 국민연금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되고 보니 성품이 무척 너그러워 졌다는 평을 받게 되었고, 목숨이 지탱하는
날까지 경제적 고충에서 벗어났으니, 이 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니 정말 신바람이 절로 생긴답니다.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음에 따라 노후가 안정되었으니, 생활비를 절약하여 최소의 금액이라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하여 부인과 상의 끝에 장학 사업에 기여하기로
결심하고, 오늘날 나를 있게 한 수동중학교(모교)에 재학중인 3명의 학생 (3학년 차병욱, 2학년 이미숙, 1학년 유보람)에게 이미 장학금을
지급하였고, 앞으로도 매년 계속 할 뜻을 가지고 있으며, 틀림없이 실천할 것입니다.
장학금 지급 시 "열심히 노력하면 목표를
달성한다."는 제목으로 특강을 하였더니 인근학교에서 수시로 특강을 요청하고 있어, 신바람은 저를 30대 초반의 젊은이로 변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최초 가입시 2회의 불입금의 혜택을 받은 당시 20여명의 종업원들도, 이젠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터득하여, 가끔 만나면, 저를 "선경지명이 남 다른 분"이라며 찬사를 쏟지요, 가끔 식사자리의 모든 비용은 항상 그들의 몫이 되어 버렸고, 해가
바뀌면 대부분이 인사차 방문하고 있어 정말 제 육체는 국민연금 때문에 30대보다 더 푸르러 졌답니다.
나는 2년 전부터 국민연금을
지급받는 수급자가 되었으니, 제가 건강을 유지하는 날까지 국민연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있는 국민을 찾아가, 60세가 지난 후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고, 또한 장애, 사망 등의 생활 위험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우리"를 위한 제도라고, 힘주어 홍보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하루속히
국민연금에 가입하도록 전력을 투구하겠다는 다짐도 함께 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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