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5회 장려상)둘이 하나되어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3/08/20

조회수

2117

내용

제5회 장려상
둘이 하나되어

이남주/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

며칠 전만 하더라도 그 곱던 노란색의 은행나무 잎이 요즈음 며칠사이 찬바람에 낙엽 되어 바람 따라 구릅니다.
빗자루를 들어 그 낙엽을 쓸려다가 잠깐 그 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함께 지냈었던 그 잎사귀들을 바람에게 빼앗기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보니,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낍니다.

이 병들고 아무쓸데 없는 몸, 저 나뭇잎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저는 (주)금호고속에서 운전사로 근속하다가 산업재해로 인하여 요양중인 이남주입니다. 6년 전 4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전 중에 갑작스런 어지럼증과 함께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이 가물거리는 순간에도 탑승하고 있는 40여명의 생명이 내 손안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식을 잃어가면서 어떻게 차를 갓길에 주차시켰는지 기억이 없었습니다. 안전하게 승객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찔합니다. 그때 한순간에 정신을 잃고 참사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얼굴색은 점점 흑빛으로 변해가고, 부종은 심하여 복수까지 차니 어쩌다가 거울 앞에 선 저의 얼굴을 보노라면 얼른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신장 180㎝에 이국적 마스크라 다들 시샘하던 외모인데....

병들어 집에 있다보니 그 많은 친구도 떨어지고, 방2칸의 전세비까지 치료비로 없어지니, 커 가는 아이들 보기도 민망스럽습니다.
아내는 척추수술로 인하여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식당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는 나보다 낫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늦은 밤 11시까지 근무하다가 지친 몸으로 돌아와 또 병간호하니 미안한고 죄스러운 마음에 죽고 싶었습니다. 어렵게 번 돈 몇 푼을 약값으로 다 써버리고 가족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죽고 싶은 자멸감과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여 유서도 써보고 찢어버리길 몇 번이나 했던지.....

수면제를 사 모으면서 조용히 가리라 결심도 했었지만 죽음의 용기만은 자신에게 없었습니다.
배에 물이 차서 숨쉬기 곤란할 때도 손과 발이 마비되어 숟가락을 못 집을 때도 이 시련을 딛고 살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일찍 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님도 불러보았습니다. 울면서 살려달라고 맹목적으로 기도도 했습니다. 그러나 병은 더 깊어가고 이제는 눈도 잘 보이질 않습니다. 복수가 가득 찬 내 배를 보면서 임신중인 여인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길고 긴 산고 끝에 여인에게 돌아오는 하나의 새로운 생명의 기적입니다. 길고 험한 캄캄한 밤을 보내면 꼭 밝은 아침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요행심도 생겼습니다.

'99년 4월 전국민연금실시라는 방송 광고를 보았습니다. 저하고는 무관한 제도라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병들어 당장 약값도 없어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있는데, 노후대책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생각도 했습니다. 방송광고 중에 국민연금에 가입중 장애가 발생하면 장애연금을 지급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간경화로 인하여 몸이 불편한 나에게는 해당되지 안겠지 하는 생각으로 흘려들었습니다.

더 이상 직장에도 나갈 수가 없어서 '99년 7월에 직장에 사표를 냈습니다. 재직당시에는 적은 월급이었지만 내 월급에 아내가 식당에서 일한 돈으로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는데 당장 내 수입이 줄어드니 생활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애들은 커가고 사글세방에서의 생활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방송에서 들었던 장애연금에 내가 혹시 해당되는지 국민연금에 물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장시간에 걸친 나의 신세한탄에도 담당자는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끝까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연금에는 해당 안되더라도 내 이야기를 자신의 일인 양 들어주는 직원이 있다라는 생각에 고마웠습니다. 제 긴 이야기를 다들은 담당자는 "왜 이제서야 오셨느냐고 하였습니다." 국민연금 가입중에 발생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하여 소득활동에 종사하시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장애연금을 지급한다고 하였습니다. 연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여 제출하면서 담당자 분에게"자꾸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자주 뵙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저하고 친하려고 하지 마세요, 될 수 있으면 저를 만나지 마시고 건강하게 사십시오."라는 말에 뒤돌아 나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재직 당시 국민연금이 월급에서 떨어져 나갈 때에는 때로는 아깝고 귀찮기도 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버림이 아니고 맡김이었습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매월말일에 통장으로 꼬박꼬박 통장으로 입금되는 국민연금을 보며, 자식들 앞에서도 나를 위해 희생하는 내 사랑스런 아내 앞에서도 나는 떳떳하게 내 자신을 내보일 수 있게되었습니다.

나에게 자신감을 되찾아 준 국민연금으로 인해 내 생활은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 외롭고 힘든 투병 생활에 큰 활력을 주는 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나에게 아픔을 통하여 세상을 다시 보게 하고 새로운 눈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과 다시 한번 세상을 살만하게 만들어주신 국민연금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나보다 더 못한 이웃은 없는지 항상 둘러보며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국민연금과 하나되어 밝은 새날을 열어가겠습니다.